테마특집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일명 '바보 의사',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장기려 박사가 한 TV 프로그램에 언급되면서 의료계 내에서 회자 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한 패널은 "그 사람을 흉내만 내어도 좋을 분으로, 부산에서 뿐만이 아니라 전국구에서 알려져야 할 인물이다"고 언급했다.


故 장기려 박사는 1911년 생으로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의대)에 입학한 후 평양연합기독병원을 거쳐 평양의대와 김일성종합대학에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 시기 김일성을 수술해 두터운 신뢰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월남했고 부산 영도에 정착해 현재 고신의료원의 전신인 복음병원을 세워 평생을 가난한 사람을 무료 진료하며 살다 1995년 12월 25일 지병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원장인 그의 월급은 언제나 적자였다고 한다. 번번이 급여를 가불해 환자들의 수술비를 대신 내줬기 때문이다. 심지어 치료비가 없는 환자에게 밤중에 뒷문을 열어놓을 테니 몰래 도망치라고 했고 헐벗은 환자에게 내복을 사주고, 영양이 부족한 환자에겐 ‘닭 두 마리 값’으로 처방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부산 소재 한 외과 계 교수도 "현재 부산지역 대학병원 외과의 뿌리는 모두 장기려 박사에서 시작해 모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며 "장기려 박사의 생전에 함께 하고 그를 모셨던 제자들은 열이면 열 장기려 박사를 자신의 롤 모델로 삼는다"고 언급했다.


장기려 박사가 우리나라 의료계 끼친 영향도 막대한데, 장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로 간 절제 수술에 성공한 이후 1974년 한국간연구회 초대회장을 맡았으며, 외과계의 발전을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정책적인 부분에서도 큰 영향을 줬는데, 최초의 민간 의료보험인 '청십자의료보험'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비용에 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청십자의료보험이 모태가 되어서 만들어 진 것이 바로 국민건강보험으로 1989년 전 국민에게 확대가 돼 현재까지 자리 잡고 있다.
세속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박사는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이다. 병원장과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지만 작은 집 한 채 없었다. 정년퇴임 후에 머문 집은 복음병원의 옥탑 방이었다. 그가 남긴 재산은 1천만 원이 든 예금통장이 전부였다. 그 돈마저 자신의 육신을 돌봐준 간병인에게 모두 주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못 올 것 같아 미리 왔네!” 박사는 남몰래 돌보던 환자에게 이 말을 유언처럼 남긴 뒤 성탄절에 홀연히 이승을 떠났다. 그리고 천상에 가장 반짝이는 별이 되었다.